비행기 안전 수칙에서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습니다.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면 자신이 먼저 착용한 후 다른 사람을 도우라는 것이죠. 이는 돌봄 상황에서도 정확히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하지만 많은 돌봄제공자들은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뒷전으로 미루며 오직 돌봄 대상자에게만 집중합니다. 저 역시 치매를 앓던 아버지를 5년간 돌보며 셀프케어는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식사, 투약, 위생 관리에만 몰두하다가 어느 날 거울을 보고 놀랐습니다. 20킬로그램이 빠진 몸, 생기 없는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의 공허함.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무너지면 아버지도 제대로 돌볼 수 없다는 것을요. 돌봄제공자의 셀프케어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돌봄의 필수 조건입니다. 이 글에서는 왜 셀프케어가 중요한지,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셀프케어 없이는 지속 가능한 돌봄도 없다
돌봄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만성 질환자나 고령 가족을 돌보는 경우 수개월에서 수년, 때로는 10년 이상 지속되기도 합니다. 이런 장기적인 돌봄 상황에서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결국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장기 돌봄제공자의 약 40퍼센트가 우울증을 경험하고, 60퍼센트 이상이 만성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문제를 겪는다고 합니다.
돌봄제공자가 쓰러지면 돌봄 시스템 전체가 무너집니다. 저는 아버지를 돌보던 중 과로로 대상포진에 걸려 일주일간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급하게 요양원에 아버지를 맡겨야 했고, 낯선 환경에서 아버지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내가 건강해야 아버지도 제대로 돌볼 수 있다는 것을요. 셀프케어는 사치가 아니라 책임입니다. 돌봄 대상자를 위해서라도 돌봄제공자는 자신의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셀프케어를 소홀히 하면 돌봄의 질도 떨어집니다. 극심한 피로 상태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실수가 잦아집니다. 약을 잘못 주거나, 중요한 증상을 놓치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커집니다. 또한 스트레스가 쌓이면 인내심이 바닥나고 돌봄 대상자에게 짜증을 내거나 냉담해지기 쉽습니다. 이는 관계를 악화시키고, 돌봄제공자 자신에게도 깊은 죄책감을 남깁니다. 저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날 아버지의 반복되는 질문에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 후 며칠간 자책감에 시달렸고, 그때부터 수면을 최우선으로 두기 시작했습니다. 충분히 쉰 후에는 같은 상황에서도 훨씬 더 인내심 있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신체 건강과 정서적 안정, 두 가지 모두 챙겨야 하는 이유
셀프케어는 크게 신체적 돌봄과 정서적 돌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두 영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균형 있게 관리해야 합니다. 신체가 건강하지 않으면 정서적 회복력도 떨어지고, 정서적으로 소진되면 신체 건강도 악화됩니다.
신체 건강 관리의 기본은 충분한 수면입니다. 하지만 돌봄제공자들은 밤중에 환자를 돌봐야 하거나, 걱정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면 부족은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이며, 우울증과 불안을 악화시킵니다. 저는 교대로 돌볼 수 있는 가족이 없었기에 주 2회 야간 돌봄 서비스를 신청했습니다. 그 이틀 밤만큼은 안심하고 푹 잘 수 있었고, 이것만으로도 일주일을 버틸 체력이 생겼습니다. 낮잠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환자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 함께 쉬거나, 요양보호사가 오는 시간을 이용해 30분이라도 눕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규칙적인 식사와 영양 섭취도 필수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끼니를 거르거나 배달 음식으로만 때우면 건강이 빠르게 악화됩니다. 저는 주말에 일주일치 밑반찬을 만들어두고, 냉동밥과 간단한 국을 준비해두었습니다. 5분이면 식사를 차릴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두니 끼니를 거르는 일이 줄었습니다. 또한 종합 비타민과 오메가3, 비타민D 같은 영양제를 챙겨 먹으면서 체력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특히 비타민D는 우울감 완화에도 도움이 되어 정신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운동은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격렬한 운동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아버지가 주무실 때 집 근처를 20분간 빠르게 걷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걷는 동안 햇볕을 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머릿속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요가도 효과적입니다. 유튜브에는 10분짜리 간단한 운동 영상들이 많으니 활용해보세요. 운동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낮추고 행복 호르몬인 엔도르핀을 증가시켜 우울감과 불안을 완화합니다.
정서적 돌봄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돌봄제공자들은 고립감, 외로움, 죄책감, 분노 등 복잡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이런 감정을 혼자 삭이면 결국 정신 건강이 무너집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됩니다. 저는 같은 상황의 돌봄제공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줄어듭니다. 전문 상담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3개월간 심리 상담을 받으며 죄책감과 분노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웠고, 이는 돌봄을 지속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실천 가능한 셀프케어 전략
많은 돌봄제공자들이 셀프케어의 중요성은 알지만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상황에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셀프케어는 반드시 긴 시간이나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이크로 셀프케어를 실천하세요. 5분에서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화장실에 갈 때 심호흡을 5회 하기, 차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기, 좋아하는 음악 한 곡 듣기, 창밖을 보며 멍 때리기 같은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 큰 차이를 만듭니다. 저는 아버지의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설거지하면서 춤을 추듯 몸을 흔들었습니다. 단 3분이었지만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작은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보세요.
경계선을 명확히 설정하고 지키세요. 돌봄에도 한계가 필요합니다. 매일 저녁 9시부터 10시까지는 내 시간으로 정하고, 그 시간만큼은 방문을 닫거나 다른 가족에게 부탁하세요.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 수 있지만, 이 한 시간이 다음 날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저는 매일 밤 9시 반부터 10시까지 30분을 제 시간으로 정했고, 그 시간에는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봤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이 시간은 엄마의 쉬는 시간이라고 미리 말씀드렸고, 급한 일이 아니면 기다려주셨습니다. 명확한 경계는 돌봄 대상자에게도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여 오히려 안정감을 줍니다.
도움을 요청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셀프케어입니다.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족, 친구, 이웃, 지역사회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세요.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생각 때문에 도움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결국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듭니다. 누군가 도와줄 게 있냐고 물으면 구체적으로 부탁하세요. 목요일 오후 2시간 동안 아버지와 함께 있어줄 수 있어요라고 명확하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저는 친한 친구에게 한 달에 두 번 토요일 오후를 부탁했고, 그 시간 동안 미용실에 가거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취미나 관심사를 완전히 포기하지 마세요. 돌봄만이 정체성이 되면 자아가 소멸하고 소진됩니다. 10분이라도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나는 돌봄제공자이기 이전에 한 명의 개인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세요. 저는 예전에 즐겨하던 그림 그리기를 완전히 놓았다가, 작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사서 아버지가 낮잠 주무실 때 15분씩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짧은 시간이 제게는 현실을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소중한 탈출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예전에 좋아했던 활동을 떠올려보고, 아주 작게라도 다시 시작해보세요.
감사 일기를 쓰는 것도 정서적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하루가 끝날 때 오늘 감사한 일 세 가지를 떠올려보세요. 날씨가 좋았다, 아버지가 미소 지으셨다, 맛있는 식사를 했다 같은 작은 것들로 충분합니다. 긍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연습은 부정적 사고의 악순환을 끊어주고, 희망을 유지하게 합니다. 저는 매일 밤 스마트폰 메모장에 세 줄씩 적었고, 힘든 날에는 이전에 쓴 내용들을 다시 읽으며 위안을 받았습니다.
돌봄제공자의 셀프케어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입니다. 자신을 돌보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돌봄을 위한 책임감 있는 선택입니다. 빈 컵으로는 다른 컵을 채울 수 없습니다. 당신이 먼저 채워져야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줄 수 있습니다. 신체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동시에 챙기고, 작은 것부터 실천 가능한 셀프케어 루틴을 만들어보세요. 당신의 건강과 행복은 그 자체로 소중한 가치이며, 동시에 돌봄 대상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오늘부터 당신 자신에게도 조금 더 친절해지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고, 쉴 자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