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저는 회사에서 우울증으로 병가를 냈다가 복직 후 냉랭한 시선을 경험했습니다. 동료들은 제 눈을 피했고, 팀 회식에서는 너 정신과 약 먹는다며 같이 술 마시면 안 되지 않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느낀 수치심과 고립감은 우울증 자체보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한국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이 22퍼센트에 불과한 이유는 서비스 부족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 때문입니다. 세계보건기구는 낙인과 차별이 정신질환 회복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합니다.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의 90퍼센트가 차별을 경험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저는 이 경험 이후 멘탈헬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에 작게나마 동참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지만, 작은 변화들이 모여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일상 대화에서 낙인 줄이기
언어가 인식을 만듭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이 낙인을 강화합니다. 저는 제 언어 습관부터 점검했습니다. 완전 미쳤어, 정신병자 같아, 사이코 같은 표현을 일상에서 쉽게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정신질환을 모욕의 언어로 만들고, 당사자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저는 이런 표현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주변 사람들이 사용할 때도 부드럽게 지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표현보다는 이해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게 어때 같은 식으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처음에는 오버한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설명하며 점차 이해를 얻었습니다.
정신질환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언어 선택이 중요합니다. 정신병자, 우울증 환자 같은 표현은 사람 전체를 질환으로 정의합니다. 대신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 조현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처럼 사람 우선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질환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싸우다, 극복하다 같은 전투적 언어보다는 회복하다, 관리하다 같은 중립적 언어를 선택했습니다. 정신질환은 의지로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건강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멘탈헬스 대화를 일상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친구들과 만날 때 요즘 스트레스 어떻게 관리해, 너는 기분 전환할 때 뭐 해 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멘탈헬스가 특별하거나 민감한 주제가 아니라 날씨나 운동처럼 일상적인 대화 소재가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제 경험을 선택적으로 공유했습니다. 나도 작년에 불안 증상 때문에 상담 받았는데 도움이 됐어 같은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도 자신의 어려움을 편하게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누군가 먼저 문을 열어야 다른 사람들도 따라옵니다.
편견에 맞서는 교육과 정보 공유
많은 편견은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저도 우울증을 겪기 전에는 그냥 기분 좋은 생각 하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무지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정신질환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화학적 불균형, 유전적 요인, 환경적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의학적 상태입니다. 저는 이러한 과학적 정보를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소셜미디어에 신뢰할 만한 멘탈헬스 정보를 공유하고, 잘못된 정보를 보면 근거를 들어 반박했습니다.
직장에서도 작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회사의 직원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팀 회의에서 이 프로그램을 소개했습니다. 누구나 무료로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용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또한 멘탈헬스 데이를 제안했습니다. 연차를 사용할 때 아프다는 핑계 없이 멘탈헬스를 위해 쉰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응이 미지근했지만, 한두 명씩 동참하기 시작하며 점차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교육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하고 권유했습니다. 지역 보건소에서 제공하는 정신건강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함께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정신건강 응급처치 교육도 받았습니다. 이는 자살 위기에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배우는 프로그램입니다. 심폐소생술을 배우는 것처럼 정신건강 위기 대응법도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교육은 편견을 줄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지식은 두려움을 줄이고 공감을 높입니다.
미디어 소비도 의식적으로 선택했습니다. 정신질환을 선정적이거나 왜곡되게 묘사하는 콘텐츠보다는 정확하고 인간적으로 다루는 콘텐츠를 찾아봤습니다. 멘탈헬스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당사자의 회복 스토리를 담은 책, 정신건강 전문가의 팟캐스트 등을 소비하고 추천했습니다. 또한 정신질환을 가진 캐릭터가 단순히 위험하거나 불쌍한 존재로만 그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가졌습니다. 미디어가 만드는 이미지는 대중의 인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가 소비하고 공유하는 콘텐츠를 선택하는 것도 인식 개선의 일부입니다.
시스템 변화를 위한 목소리 내기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구조적 변화가 필요합니다. 저는 직장의 인사 담당자에게 멘탈헬스 정책 개선을 제안하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정신건강 휴가를 신체 건강 휴가와 동등하게 인정하고, 상담 비용 지원을 확대하며, 관리자 대상 멘탈헬스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목소리는 작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 다섯 명과 함께 서명하여 제출하자 경영진이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후 실제로 정책이 일부 개선되었습니다. 변화는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지역 사회에서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구청의 정신건강 예산 공청회에 참석해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청년층을 위한 저비용 상담 서비스 확대, 멘탈헬스 인식 개선 캠페인 예산 증액을 요청했습니다. 또한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정신질환을 이유로 한 고용 차별 금지를 강화하고, 학교 정신건강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활동이 즉각적인 결과를 만들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요구하면 정책 입안자들도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멘탈헬스 관련 잘못된 기사에는 댓글로 팩트를 제시하고, 차별적 표현이 담긴 게시물은 신고했습니다. 반대로 좋은 정보와 긍정적인 캠페인은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확산시켰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정신건강 관련 청원이 올라오면 서명하고 주변에 알렸습니다. 온라인 공간은 빠르게 여론을 형성하고 가시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클릭 한 번, 공유 한 번이 작아 보여도 수천 명이 모이면 변화의 압력이 됩니다.
당사자와 가족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일도 했습니다.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들이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의 활동을 후원하고 자원봉사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제 네트워크에 전달하고, 행사가 있을 때 함께 참여했습니다. 정책은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당사자를 대신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가 더 멀리 들릴 수 있도록 플랫폼을 제공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당사자가 주체가 될 때 일어납니다.
멘탈헬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은 장기전입니다. 저 혼자의 힘으로 사회를 바꿀 수는 없지만, 제 언어를 바꾸고, 제 주변을 바꾸고,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3년 전 저를 낙인찍던 회사는 지금 멘탈헬스 프렌들리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작은 변화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여러분도 오늘부터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시작해보세요. 차별적 언어를 쓰지 않기, 정확한 정보 한 가지 공유하기, 잘못된 편견에 한 번 반박하기.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정신건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갈 것입니다. 낙인을 없애는 것은 전문가나 정책가의 일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