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프로젝트 회의에서 저는 또다시 모든 것을 제 방식대로 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동료가 제안한 아이디어에 즉각 반대했고, 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자 불안해졌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한 동료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항상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하나요? 그 질문이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저는 그저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변명했지만,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료의 말이 맞았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제 통제 안에 두려고 했습니다. 프로젝트의 모든 세부 사항, 팀원들의 작업 방식, 심지어 친구들과의 만남 장소와 시간까지도요. 통제할 수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꼈고, 통제하지 못하면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고, 저 자신도 끊임없는 긴장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제 삶을 더 통제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통제욕을 내려놓고 진정한 평온함을 찾아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통제욕 뒤에 숨은 두려움 마주하기
통제욕은 겉으로 보기에 책임감이나 완벽주의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에는 깊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저는 상담을 받으면서 이를 깨달았습니다. 상담사는 물었습니다. 통제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나요? 저는 한참을 생각한 후 대답했습니다. 모든 게 엉망이 될 것 같아요. 실패할 것 같고, 사람들이 저를 무능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제 통제욕의 진짜 이유였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평가받는 것에 대한 불안, 무가치하다고 느껴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통제는 제게 이런 두려움으로부터의 방어 기제였던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통제욕이 종종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합니다.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자랐거나, 중요한 결정권이 없었던 경험, 또는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던 기억들이 성인이 되어 강한 통제 욕구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과거를 되돌아봤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을 겪으면서 제 삶이 통제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상황들이 있었고, 그것이 제게 무력감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저는 무의식적으로 제 삶의 모든 영역을 통제하려고 애써왔던 것 같습니다. 다시는 그런 무력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요.
저는 제 통제욕이 어떤 상황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지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2주 동안 매일 저녁 그날의 통제 욕구를 기록했습니다. 언제 통제하려고 했는지, 그때 무엇이 두려웠는지, 통제한 후 기분이 어땠는지를 적었습니다. 패턴이 명확해졌습니다. 저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가장 강하게 통제하려 했습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때, 타인에게 의존해야 할 때, 제 전문 영역이 아닐 때 통제 욕구가 치솟았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통제한 직후에는 안도감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큰 불안이 찾아왔습니다. 왜냐하면 통제해야 할 것들이 계속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통제는 환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타인의 생각과 행동, 외부 환경, 미래의 결과를 저는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제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통제 불가능한 것들을 통제하려고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 스트레스와 불안의 근원이었습니다. 상담사는 말했습니다. 통제를 내려놓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시작입니다.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구분하기
통제욕을 내려놓기 위한 첫 번째 실질적 단계는 무엇을 통제할 수 있고 무엇을 통제할 수 없는지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상담사는 제게 통제의 원이라는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종이에 세 개의 동심원을 그렸습니다. 가장 안쪽 원은 제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중간 원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들, 가장 바깥 원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제 삶의 다양한 영역들을 이 원 안에 배치해봤습니다. 놀랍게도 대부분이 중간 원이나 바깥 원에 속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안쪽 원,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제 태도, 제 노력, 제 반응, 제 선택이었습니다. 날씨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우산을 가져갈지 선택할 수 있고, 타인의 의견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제 반응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제가 맡은 부분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이 구분을 명확히 하자 제 에너지를 어디에 쏟아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은 의식적으로 내려놓았습니다.
실천 방법 중 하나는 걱정 목록 만들기였습니다. 불안한 생각이 들 때마다 그것을 적고, 옆에 통제 가능, 영향 가능, 통제 불가능 중 하나를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통제 가능한 것들에 대해서만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세웠습니다. 예를 들어 프레젠테이션이 잘될지 걱정될 때, 프레젠테이션 결과 자체는 통제 불가능했지만, 충분히 준비하는 것은 통제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상사가 제 보고서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통제 불가능했지만, 최선을 다해 작성하는 것은 통제 가능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자 불안이 줄어들고, 실제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연습은 만약에라는 생각 멈추기였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만약 이렇게 되면, 만약 저렇게 되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미래를 통제하려는 시도였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불안만 증폭시켰습니다. 상담사는 제게 만약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것을 인식하고 멈추라고 했습니다. 대신 지금이라는 단어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만약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대신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만약 사람들이 날 싫어하면 대신 지금 이 순간 나는 진실되게 행동하고 있다. 이 연습은 제 주의를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서 통제 가능한 현재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현재에 집중할 때 불안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습니다.
흐름에 맡기는 용기와 신뢰 키우기
통제를 내려놓는 가장 어려운 부분은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안심했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패닉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삶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합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계획해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저는 불확실성을 적으로 보지 않고,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작은 실험들을 했습니다. 여행을 갈 때 세세한 일정을 짜지 않고 그냥 가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계획에 없던 우연한 발견들이 오히려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친구와의 만남에서도 모든 것을 정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뒀습니다.
흐름에 맡긴다는 것은 무책임하거나 게으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 결과는 우주에 맡기는 지혜입니다. 저는 이것을 프로젝트에 적용해봤습니다. 제 역할은 완벽하게 수행하되, 팀원들의 작업 방식은 간섭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불편했습니다. 제 방식이 더 효율적일 것 같았고, 끼어들고 싶은 충동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참았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팀원들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방법들을 찾아냈고, 결과는 제가 모든 것을 통제했을 때보다 더 좋았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통제를 내려놓으면 다른 사람들의 강점이 발휘될 공간이 생긴다는 것을요.
신뢰를 키우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저는 타인을 믿지 못했고, 심지어 제 자신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확인하고 재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계를 해쳤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자신들을 믿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것이 상처를 주었습니다. 저는 의식적으로 신뢰를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료에게 일을 맡기면 중간에 확인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친구가 약속 장소를 정하면 제안 없이 따라갔습니다. 가족이 요리를 할 때 간섭하지 않고 지켜봤습니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제 신뢰에 보답했습니다. 그리고 설령 제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와도, 그것이 재앙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수용의 힘을 배웠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과 싸우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상담사는 제게 수용 기도문을 소개했습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그리고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매일 아침 읽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즉각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바꿀 수 있는가?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였습니다. 비가 와서 야외 계획이 취소되면, 화내지 않고 실내 활동을 찾았습니다. 프로젝트 방향이 바뀌면, 저항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에 적응했습니다. 이렇게 수용하는 연습을 하면서 제 삶이 훨씬 더 부드럽고 평온해졌습니다. 더 이상 세상과 싸우지 않고,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통제욕을 내려놓는 것은 여전히 제게 도전입니다. 오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고, 불안한 순간에는 다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충동을 알아차리고,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통제할 것인가, 내려놓을 것인가. 그리고 점점 더 자주 내려놓는 쪽을 선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통제를 내려놓았을 때 제 삶이 더 가벼워지고, 관계가 더 깊어지며, 마음이 더 평온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깨달음은 진정한 통제는 모든 것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놓아줄 수 있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도 시작해보세요. 오늘 하나의 작은 것을 통제하지 않고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세요. 그 불안을 견디고 나면 그 너머에 예상치 못한 자유와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 흘러갑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당신의 계획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